부모로부터 시작되는 직계 조상에 대하여 오름차순으로 계속해서 사유하다 보면 사람은 끝에 이르러서 자신의 기원은 ‘반드시 스스로 존재했어야 한다’ 생각하게 됩니다.
즉, 자신의 최초 직계 조상은 아무런 존재 근거도 없이 스스로 존재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그렇게 생각해야만 어떤 모순에도 시달리지 않기 때문이죠.
이런 생각을 근거로 해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라는 하나님의 자기소개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런데 노자가 썼다는 ‘도덕경’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사람이 자신의 직계 조상에 대하여 반드시 사유해야만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이런 구절들이 근거가 되어 노자도 자신의 직계 조상을 사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인데요, 또, 그러다가 노자가 생각을 충분히 정리하지 않은 채 횡설수설 ‘도덕경’을 썼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이죠.
다시 이를 근거로,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는 구절이 ‘기원은 ‘스스로 존재했어야 한다’는 뜻임도 알 수 있는 것이고요.
하지만 노자만큼 사유해서는 사람이 자신의 기원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의 기원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려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라는 예수의 자기소개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사유해야 하는데요, 그렇다 보니 노자만큼 사유해서는 결코 하나님의 자기소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죠.
그리고 자신의 최초 직계 조상이 하나님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고요.
같은 이유로, 노자는 결국 근원이라는 뜻의 ‘도’(道)라고 표현한 자신의 최초 직계 조상이 누구인지 모르고 죽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노자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기원에 대하여 지금만큼 많은 정보를 알 수는 없었는데요, 그렇다면 노자는 자신의 기원이 누구인지 짐작조차 못 한 채 죽었을 수도 있죠.
물론, 아주 운이 좋게 자신의 기원이 누구인지 알았을 수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