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
이런 하나님의 자기소개에는 하나님은 죽음을 초월한다는 뜻도 담겨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죽음의 지배를 안 받는다는 것인데요, 에녹이 죽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한테 이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하나님이 죽음의 지배를 안 받다 보니 덩달아 죽음의 지배를 안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히 11:5)
예수께서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렇다면 당연히 아담과 하와도 죽음의 지배를 안 받아야 하겠건만, 하나님은 두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경고합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즉, 죽음에 지배받게 되리라는 것인데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하나님과의 사이에 죽음이 끼어들게 되리라는 것이죠.
그러니 사람은 하나님과 죽음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서 계속해서 죽음에 간섭받게 되리라는 것이라는 말씀이고요.
마치, 사람의 다스림을 받는 온갖 생물처럼.
그렇다 보니 죽음의 지배를 받게 되면 사람은 죽어야만 겨우 하나님한테 이를 수 있습니다.
그 반면, 살아서는 결코 하나님한테 이를 수 없는데요, 하나님과 서로 대화는 할 수 있어도 하나님한테 이를 수는 없죠.
심지어 하나님과 대화조차 못 하게 될 수도 있고요.
물론, 이렇게 되었다고 해도, 누구인가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죽음을 뚫고 다리가 되어준다면 사람은 다시 원래처럼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원래처럼 죽지 않고 하나님한테 이를 수도 있는데요, 예수는 자신이 바로 그런 다리라고 소개하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